코로나19가 보여준 인간.

이준민

코로나19가 보여준 인간.


 일반적으로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유행병은 인간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느 듯하다. 왜냐면 코로나19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면서 사람들의 선택은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퇴근 후 ‘오늘은 저녁에 무엇을 할까’에 대한 답변이 정해져버린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선택지는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뿐이다.


 선택에 대한 박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주식시장이다. 전염병에 의해서 사회적 활동이 점차 어렵게 되면서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물류 체인이 형성되어 있는 시대에는 큰 문제이다. 부품 생산에 문제가 없을지, 구매한 물건 들은 언제 통관이 될지, 판매하는 장소는 정상적으로 영업이 가능한지 불확실한 것들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주머니 속 돈'이다.


 선택의 박탈은 이미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Big Data 얘기다. 우리는 쿠팡을 켜서 상품을 고르는 것 같지만 사실 인공지능의 분석으로 설계된 추천 상품을 살 뿐이다. 선택이란 감각은 손가락을 움직여 장바구니를 넣는다는 행위에서 오는 착각일 뿐이다.(결제를 한다는 감각은 달나라로 가버렸다. 로켓페이 덕분에.)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이 어떤 발표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DATA뿐이다.” 수 많은 상품은 오히려 불확실성이고 플랫폼의 추천은 확실한 선택이 된다.


 코로나 19가 야기한 혼란에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치사율이 1%정도인 감기에 이렇게까지 민감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래도 신종 바이러스에 갖는 공포의 본질 자체도 결국엔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포함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다. 이 ‘불확실성’이 선택지를 단순하게 만들어주고 그 선택에 대한 확신을 단단하게 만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선택한다'라는 행위는 사실상 선택되어지는 행위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은 아닐까? 실존주의에서는 많은 선택지 중 하나를 인간의 의지로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특정한 선택을 하게 '되'는 구조(構造)화된 인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사람은 선택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고, 불확실성이 만들어 놓은 경로만 따라가는 수동적인 존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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