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어지는 것과 도드라지는 것

이준민

옅어지는 것과 도드라지는 것

 당구는 재미가 없었다. 큣대를 잘 다루지 못하는 탓이다. 고등학교 1학년 사촌형에게 처음 배웠는데 재능이 없음을 바로 알아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생 시절 공강 때 동기들이 당구장에 모여 있을 때면 여자 동기들이 모여 있는 카페로 향했었다.

 당구장을 피하는 건 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학번이 하나씩 내려갈수록 공강 때 당구장으로 향하기보다는 피씨방이나 플스방으로 모였다. 게임에 재능이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터라 이번엔 여자 후배들과 함께 노닥거렸다.

 학번이 내려감으로써 모임 장소만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학교 행사(학과 행사, MT, 각종 학상 자치 활동 등)에 대한 참여율도 내려갔다. 4학년이 되었을 즈음, '후배들은 개인주의가 심하며 선후배 간의 관계 혹은 전통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게 됐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현상을 설명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상기(上記)한 경험으로부터 얻은 인상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했을 때 대다수는 이 경험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05, 06, 07, 08, 09 학번이 내려갈수록 옅어지는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옅어진다고 느끼는 것’이 ‘세대차’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자신이 속한 세대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가 희석되고 예상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의 행동들이 도드라진다. 도드라진 것이 신경쓰이면 손위 세대는 손아래 세대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세대차’라고 말하고 교감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세대차’라는 불편함은 각 세대의 ‘불안’에 가깝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 이유는 각자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옅어져가는 무엇인가를 붙잡고자 던지는 엄포라면,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에는 젊은 사람들의 조롱이 녹아있다. 엄포와 조롱은 반대의 의미지만 그 안에 숨은 심리는 불안으로 동일하다.

 티타노마키아는 크로노스(아버지)와 제우스(아들) 간의 전쟁으로 세대간 갈등의 원형이 되는 신화로 많이 인용된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아버지인 우라누스를 죽인 것처럼 자신도 자식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태어나는 자식들을 죽였다. 제우스는 아버지를 속여 살아남았고 마지막까지 크로노스를 속임으로서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자유가 됐다. 서로의 불안이 갈등의 핵심이라고 말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밀레니얼이니 90년대생이니 하며 세대의 특성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일은 사회를 이해는 데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딱지를 붙여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 이해를 넘어 감정의 영역까지 들어서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서로에게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신조차도 반복하는 갈등이라면 인간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옅어지는 대로 드러나는 대로 시대의 변화를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Copyrights © 2020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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