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용도

이준민

“1 소대장님 중대장님이 찾으십니다.”

 강원도 철원 수상령 중대 소대장실로 한 병사가 찾아와 말했다. 당시 중대 내 모든 소대장들은 이제 OBC(초급장교훈련)을 마치고 부임한 초짜들이었다. 중대장의 호출이라니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1소대장은 바싹 긴장해서 중대장실로 향했다. 무슨 일로 그를 불렀는지 아무도 짐작하는 바가 없었고, 모든 것이 걱정되던 시기였다. 중대장실로 향하는 그의 얼굴은 긴장과 궁금함이 섞여 있었다.


 15분 정도 뒤에 1소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휴가를 나간 소대원 중 하나가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다른 손님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났고 경찰에 사고가 접수됐다. 중대장은 그 소식을 상급부대로부터 들었고 소대장을 호출했다. 소대장은 휴가전 교육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냐는 질타를 들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호통을 들었다. 이에 굳은 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1소대장에게 비슷한 일들이 계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가서 싸우고 오는 소대원이 있는가하면 복귀를 늦게하는 소대원도 있었고, 반입이 금지된 물건들을 몰래 숨겨오는 소대원들도 많았다. 그때마다 1소대장은 중대장의 호출을 받아야 했다. 2달 내내 시달렸던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스트레스를 왜 내가 받아야 할까”


 책임의 본질은 바로 1소대장의 한탄에 있다. 책임은 고통을 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다시 정의하자면 책임은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짊어져야 하는 고통이다. 그런 면에서 법률에서 말하는 책임이 일상에서의 의미보다 더 정확하다. 일부 기업에서 '팀장'이라는 말 대신 '책임'이라는 말을 쓰는 데는 '책임'의 뜻을 항상 생각하면서 일을 진행하라는 의도가 깔려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책임'을 달고 있는 사람이 한 팀 내에 여럿 있는 일은 좀 이상한 일이지만.

 책임이 크다면 책임자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저 밑에 있는 부하가 저지른 나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그런 잘못도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의 몫이 된다. 드라마나 영화 얘기를 할 것도 없이 한국 뉴스를 보면 이런 문책이 흔하다. 경찰 조사에 문제가 생기면 서장이 옷을 벗고, 행정 공무원의 실수로 장관이 옷을 벗는 일 말이다. 계급이 올라가고 직위가 높아지면 어깨가 무겁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상급자가 챙겨줘야 할 하급자가 많다는 뜻도 있지만 '책임'이 꼬리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이 크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냐면 책임이 큰 사람이 누리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개 소대장도 통신병이 챙겨주며, 작은 권한이지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조직에서 직급이 올라가면 얻는 것도 많다. 급여가 상승하는 것 외에도 더많은 혜택이 있고 개인이 발휘하여 얻을 수 있는 결과물도 전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 더 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다. 이런 면에서 책임의 반댓말은 무책임이 아니다. 보상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보상에 의해서 책임이 가려지는 일이다.
 

 사실 사회 생활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대부분이 이런 일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자기가 받게 될 보상만 생각하고 짊어지어야 하는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말이다. 세대 갈등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기성 세대가 밀레니얼에게 업무에 대한 책임보다는 본인의 권리만 누린다고 말한다. 밀레니얼이 라떼들을 비난하는 것은 시대 변화를 이해해야 하는 책임은 피하고 기존의 권력만 지키려한다고 비판한다. 법학에서는 책임을 '비난가능성'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책임을 짊어지기보다는 '비난'을 위한 이유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Copyrights © 2020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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