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깨져버린 사회

하루는 뒷좌석에 타고 있던 아이가 대뜸 "그런데 왜 나만 양보해야 돼?"라고 물었다. 얘기를 들어본즉, 장난감을 양보하면 유치원이 끝날 때까지, 그네를 양보하면 그 애가 집에 갈 때까지 내 차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 우리 부부는 "가능하면 내가 먼저 양보하자, 모두가 순서를 지키면 금방 내 차례가 돌아온다"라고 가르쳤는데 너무 순진했던 걸까...  모두가 순서를 지키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하게 된 순간, 서로의 신뢰는 깨져버렸고 아이의 눈에는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인 세상이 되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이런 불신은 한국 사회의 저변에 넓게 깔려있다. 국민연금을 예로 들어보자. 요즘 20~30대 젊은 근로자들 중, 내가 낸 만큼 나중에 연금을 돌려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연금 구조가 지금의 노인 세대에게만 유리하게 설계되어(소득대체율이 높다는 의미) 갈수록 기금이 고갈되고 있고, 결국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노인이 되었을 때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거란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가 주도의 연금제도는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를 부양하고, 이들이 은퇴할 때가 되면 다시 그 후세대가 본인들을 부양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 믿음이 깨져버린 상황으로 보인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뜨거운 감자다. 공직자들의 말만 믿고 집을 사지 않았다던 사람들의 분노가 매서울 정도다. 한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만 26차례나 쏟아내는 동안, 시장은 계속해 혼돈에 빠지고 전국의 집값이 무섭게 올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집값의 상승은 전 세계 공통의 문제라 하지만, 정부의 말과는 항상 반대로 행동해야 내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리는 웃을 수 없는 현실은 사람을 넘어, 정부의 말도 믿을 수 없다는 역시나 신뢰가 깨져버린 한국 사회의 이면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리면 이혼. 거래은행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리면 뱅크런.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린 사회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니 무서울 지경이다. 내로남불과 편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옛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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