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목적

이준민

시험의 목적


 한국에서 시험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삶의 목표, 학원 산업의 원천, 학생의 자존감, 사랑 받는 이유, 학교 생활의 장벽 그리고 커리어의 방향. 시험이 좋든 싫든 한국 사람들은 시험을 치르고 시험과 관련된 일들을 경험한다. 대학교 4학년 졸업 전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공허감을 느꼈다. 16년간 시험이 차지했던 자리가  생각보다 넓었다. 그 생각도 잠시였다. 취업을 위해 다시 시험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아마 한국 사람으로서 그 자리를 없애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시험은 기본적으로 좋은 학습 도구다. 무엇가를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시험을 보면 된다. 점수는 높은 확률로 해당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의미한다. 점수와 이해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견들은 다양하지만 시험이라는 방법의 심원한 원리를 파헤치고 싶은 게 아니다. 시험 방법을 떠나서 시험 행위는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데카르트는 백지 위에 공부한 내용을 쓸 수 없다면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시험은 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어떤 방법이든 시험은 훌륭한 도구다.


 문제는 목적이 뒤바뀔 때다.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도구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다. 사람들은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 중고생은 90점, 수능은 400점, 토익은 900점, 한국사 시험 1급, 입사 시험 그리고 공무원 시험.  시험의 결과를 얻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목표다. 학습은 시험을 위한 것이되고 시험을 마친 사람들은 혹은 거기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학습을 멀리한다. 학습은 삶의 짐이기 때문에 시험이 끝나면 그 짐을 다시 짊어지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사회와 동떨어지는 데는 이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인 이이는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알았다.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시험을 위해 공부했다. 수험생은 시험에 붙는 방법만 공부했다. 합격자들은 나랏일이 중요했다. 두 집단 모두 실제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이는 과거 시험이 공부를 멀리하게 한다며 이런 세태를 비판했다. 수백년 전 한 학자의 비판이 지금 사회에도 울림이 있다. 한반도에서 시험은 깊고도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시험이라는 조난 지역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Copyrights © 2020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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