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덕

칼디라는 이름을 가진 목동이 수도승에게 말했다. 


"염소들이 이 열매를 먹고 눈이 밝아져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춤을 추었습니다. 기이한 생각이 들어 가져왔습니다." 수도승은 가만히 소년의 얼굴과 과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심하게도 이 열매를 불에 던져버렸는데, 열매가 구워지면서 매혹적인 향이 방을 가득 채웠다. 수도승은 불씨를 뒤적여 구워진 씨앗을 꺼냈다. 윤기가 배어난 까만색 콩은 화롯불에 영롱하게 반짝였다. 성경의 한 대목처럼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기도 했다. 잘 빻아서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더니 평소와 달리 눈이 밝아졌고, 그로부터 야간 기도가 이어지는 수많은 밤을 견딜 수 있었다


이것이 커피의 유래에 대한 설화다. 에티오피아 남서부, 커피의 기원이자 어원인 '카파' 지역에는 지금도 비슷한 이야기가 다양한 버전으로 전래하고 있다. 카파 사람들이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2004~2005년 미국-프랑스 연합 고고학 프로젝트는 카파 남부, 바위 틈새 피난처에서 부싯돌과 도구들, 몇 알의 커피콩을 찾아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최소 1800년 전 것이었다


서필훈(2021).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문학동네.



그로부터 약 3,800년 뒤, 이역만리의 한 동양인은 어떻게 커피를 즐기는가. 어릴 적 집에는 어머니를 위한 맥심 커피가루와 프리마, 설탕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는데, 호기심에 몰래 한 수저 떠먹어 본 게 커피와의 첫 만남. 이후 학창 시절 시험공부에 눈이 무거워질 때면 설탕 가득 채운 커피를 한 잔씩 들이키고는 했다.


직장에 들어오니 점심 먹고 커피 한 잔은 필수 코스다. 촌스럽게 프림과 설탕을 달라기도 뭐해 선배들이 사 먹는 걸 그대로 따라 마시니, 그것은 바로 쓴맛 강렬 아메라카노. 분명 맛있지는 않은데 묘하게 당기는 맛. 쓰디쓴 맛이 마치 내 인생 같기도 하고, 정이 붙었는지 어느샌가 블랙커피만 고집하게 되었다.


하루에 몇 잔이고 커피를 마시니 이제는 어느 가게 어떤 원두가 내 입맛에 맞는지 자연스럽게 알 게 되고, 외부에서 누굴 만날 일이 있으면 일부러 단골 카페로 안내한다. 그러기를 수년 반복하던 때, 항상 찾던 커피숍이 코로나 여파로 별안간 문을 닫았다. 대안으로 새로 찾아놓은 카페도 몇 달 뒤 폐업하자, 출근 후 더 이상 갈 수 있는 커피숍이 없었다. 아니, 둘러보면 발에 채이는 게 카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커피를 마시는 게 곤욕스러웠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내가 직접 커피를 만든다" 


홈바리스타가 되기로 결심한 뒤, 전문서적과 유튜브를 통해 커피에 대한 기초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아, 10년 차 직장인의 커피 입맛이 유달리 까다로웠던 게 아니다. 원두와 로스팅 퀄리티부터  에스프레소 머신의 성능, 바리스타의 손놀림에 커피 맛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던 것이다. 알면 알수록 깊이 빠져드는 신비의 세계... 나는 그렇게 입덕을 하고 말았다.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에스프레소 머신 전원을 켠다. 보일러를 123도까지 예열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7분.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 천천히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완성한 나만의 레시피. 로스팅 한 지 1주일이 체 지나지 않은 신선한 원두를 호퍼통에 넣고, 커니컬버 자동 그라인더를 이용해 5-C 분쇄도로 갈면 참기름 냄새나는 고소한 커피가루가 내려온다. 정확히 16g의 커피가루를 포타필터에 넣고 디스트리뷰터로 골고루 펴준 다음 템퍼로 꾹 눌러주면 준비 완료. 포타필터를 머신에 꽂아 넣고 레버 손잡이를 올리면, 압력게이지가 9Bar를 가리키면서 크레마 가득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한 모금 먹고 미쳤다. 두 모금 먹고 미쳤다를 외친다. 카페보다 더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왜 이 맛을, 이 재미를 진즉 몰랐을까... 무심하게도 커피 열매를 모닥불에 던져버린 수도승이여. 이 글을 본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감사합니다..." 




Copyrights © 2020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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