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액땜] :  앞으로 당할 큰 액운을 대신하여 미리 다른 가벼운 고난을 겪어 때우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2020년이 가고 달력은 바뀌었는데, 이렇게 무감각하게 맞이하는 새해는 또 처음인 듯하다. 뉴스 리포터가 외쳐대는 카운트다운과, 보신각 종소리도 들리지 않아서일까.. 커튼을 열어젖히면 늘 보이는 해는 또 그렇게 밝았다.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의 시작이다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새해를 맞이하는 일은 참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자정까지 졸린 눈을 비비고 앉아 가족들과 케이크 한 조각 잘라먹는 맛이 있었고, 올해는 또 뭘 그렇게 해보겠다며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새해 계획을 적어놓곤 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하고 계획한 일을 실행해 옮기다 보면 어느새 목표한 곳에 가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사는게 참 쉽고도 재미난 시절이었다


남 걱정 없이 나 혼자 건사하기만 하면 문제없던 그 시절의 '새해'는 설레는 일들이 가득했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고 나 혼자가 아닌 가족을 챙겨야 하는 가장, 노부모를 돌봐야 하는 자식, 올해도 매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직원 등의 여러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성인이 되고 난 뒤, 새해는 기대되기는커녕, 그냥 무사히 지나가기만 하면 바랄 게 없는 그저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그냥 스쳐 지나가도 좋을 새해.. 그런데 정초부터 말썽이다. 아이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 하더니만, 놀란 마음에 병원을 데려가보니 오른쪽 망막에 원인 모를 심한 염증이 있단다. 그 와중에 처가댁은 이사할 집 대출을 못 받아 도움을 청하고, 회사에선 신제품 출시 기간이 겹쳐 밤낮없이 전화벨이 울려댄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새해지만 이렇게 또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하늘이 야속하다


이럴 때 꺼내 쓰는 신통방통 해결책이 있으니, 그 이름하여 '액땜'. 우리 선조들도 나처럼 새해부터 어려운 일이 많았나 보다. 고통과 시련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랄까.. 그저 액땜이라 생각하면, 앞으로 닥쳐올 더 큰 불행을 이 가벼운 고난들로 대신하는 것이니 한순간에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어차피 고통 속에 살다 가는 게 인간사라 했던가. 그 와중에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라도 찾길 바라며, 오늘도 그저 묵묵히 버텨낸다. 에라이! 그래 이것도 액땜이다! 




Copyrights © 2020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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