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에 대한 방황

이준민

방황에 대한 방황


1


 얼어붙는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주말 저녁 모두가 잠든 집에 혼자 있을 때 몸이 굳는 느낌을 받는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적인 정지 상태다. 늦은 시간이라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잠은 자기가 싫다.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하기엔 가슴 속 열정이 없다. 영화를 보자니 2시간 동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가 부담스럽다.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다. 읽을 책들은 많지만 당장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음악을 듣기는 질리고 악기를 만지러 가자니 어렵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만 남고 무엇도 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생각한다. 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까.


2


 빈 종이는 이중적인 녀석이다. 가슴 속을 꺼내 보여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막상 비워진 종이를 마주하면 글을 쓰려는 사람을 막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무엇을 쓸지 몰라 붓방아질을 한다. 결국 내가 고백하게 되는 것은 막막함이다. 그래서 막막하다고 쓴다. 그리고 막막함에 대해서 얘기한다. 막막함이 이렇고 저렇고 … . 쓰다 보면 어느덧 몰스킨 노트 한 장은 볼펜 잉크에 젖기 시작한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나의 일기장에 ‘쓸 말 없음’에 대한 내용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어쩌다 보니 그렇다. 쓸 말도 없는데 그것에 대해 쓴 말들이 많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3


 Deadmau5*에 따르면 음악을 만드는 일은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뭔가를 해보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사실 텅빈 MIDI 화면을 보고 있으면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몇 가지 좋은 부분을 만들어 놓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피아노도 만져보고 드럼머신도 만져본다. 신디사이저로 이리저리 조작을 해보지만 사실 내가 원하는 대로 소리가 나오지도 않는다.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뭐든 해보자는 심산이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며칠을 만지다 보면 프로젝트 폴더에 뭔가가 쌓인다. 완곡도 있고 미완곡도 있지만 여기서 뭔가가 만들어진다. 뭘하는지 모르는데 뭔가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4


 돌이켜보면 방황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신이 아닌 이상 무언가를 완벽하게 계획하고 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데 어떻게 방황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방황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그 해결책일 수 있다. 방황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고 방황을 하다보면 무엇인가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 부산물을 토대로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영원히 방황할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방황 자체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거기서 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삶의 문제에 정답은 없지만 방황 속에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나 모순적인 의견일까.



*Deadmau5 :  캐나다의 유명한 음악 프로듀서다. 한 강의 서비스 광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Ninety percent of my time is just goofing around and trying to come up with something. That’s the way I go about making music…”

Copyrights © 2020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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