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삶'에 집중하다

살아생전 어떠한 감각으로도 느낄 수 없는 '죽음'. 그것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일 것이다. 가 본 사람은 있어도 돌아온 사람은 없을 테니 "죽음이란 무엇인가?" 란 물음에 정해진 답은 있을 수 없다. '죽음'을 명확히 설명해낼 수 없다 보니 반대로 모두가 '삶'에만 집중하게 된 것은 아닐까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옛말처럼, 누구에게나 죽음은 멀고도 두려운 것이었으니, 우리는 그토록 사는데 집착했나 보다. 너도 나도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며 달리고 달리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죽음'의 존재를 잊고 사는데 익숙하다. 그토록 원하던 걸 갖게 되었을 때, 비워지는 그릇이 아쉬울 정도로 맛난 음식을 먹을 때, 정열의 섹스로 오르가즘을 느낄 때, 그럴 때 우리는 '죽음'의 존재를 느낄 틈이 없다. 마약에 취한 듯 살아있음에 취한다


"삶에 대한 우리의 식욕은 왕성하고, 삶에 대한 우리의 갈증은 만족할 줄을 모른다" <만물의 본성에 관하여>


무려 2,100여 년 전에 살던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쓴 말이라고 하니 '삶'에 대한 집착은 현대인 혹은 한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닌듯하다.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의 공포를 잊고 살고 싶은 건, 너도 나도 마찬가지다


많은 철학자와 현인들이 '죽음'이란 걸 항상 인지하고 살라고 했으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신용 대출을 풀로 땡껴 외제차를 샀다는 친구에게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당장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벤츠가 뭔 소용이냐"고 했다가 돌아오는 대답에 할 말을 잃는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오늘만이라도 벤츠 한 번 타보고 죽어야 되지 않겠냐?" 솔직한 답변이다


내 앞에 '죽음'이란 걸 항상 인지하고 살 수 없다면 반대로 '삶'에만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 혹여 죽음이 두렵다면 우선 술을 끊고 매일 만보 걸음을 채우며, 혹시 몰라 요절할 걸 대비해 2억짜리 사망보험을 가족들 앞으로 들어 놓자.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동안 나름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고 애써보는 거다


"나는 소파에 드러누운 찰나의 고깃덩이인가",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우주의 먼지인가" 고민할 것 없이, 어릴 적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 그녀와의 애틋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찰나의 시간이라도 충만히 살아보는 거다


그리고 이 짧은 삶이 끝날 때 즈음 비로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가족들과 주변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난 뒤 텅 빈 응접실의 스위치를 내리자. 무섭지만 피할 수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이승의 문턱을 넘어 그토록 꿈꾸던 무한의 휴식이 기다리고 있다면 생각보다 괜찮지 않을까 






Copyrights © 2020 RASH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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